전세 vs 월세, 계산으로 따져보기
같은 회사 동기가 전세로 옮겼다는 말을 들은 건 입사 3년 차 봄이었다. 보증금을 크게 넣는 대신 매달 나가는 돈이 절반 아래로 줄었다고 했다. 그날 퇴근길에 나는 회사 근처 부동산 두 곳을 들렀고, 지금 사는 원룸과 비슷한 크기의 전세 매물 두 개를 보고 나왔다. 지하철에 앉아 휴대폰 계산기를 열었는데, 숫자를 두드리기도 전에 막혔다. 월세는 매달 빠져나가는 돈이고 전세보증금은 한 번에 묶이는 돈이다. 단위가 다른 이 둘을 어떻게 같은 줄에 세워야 하는지부터 몰랐다.
둘은 다른 집이 아니라 같은 돈을 다르게 두는 방식이다
전세와 월세를 두고 고민할 때 사람들은 대개 어느 쪽이 유리한지부터 찾는다. 그런데 두 방식은 유리하고 불리한 상품이 아니다. 주거비를 내는 시점과 형태가 다를 뿐이다. 월세는 매달 현금으로 낸다. 전세는 목돈을 집주인에게 맡겨 두고, 그 목돈이 벌어올 수 있었던 이자를 대신 포기한다. 목돈이 모자라 대출을 끼면 포기하는 이자 대신 실제 이자를 낸다.
그러니 비교의 원칙은 하나다. 모든 항목을 '1년에 얼마'라는 같은 단위로 바꾼 다음 나란히 놓는 것이다. 월세는 이미 매달 나가는 돈이라 열두 배만 하면 되고, 보증금은 그 돈이 내 통장에 있었다면 벌었을 이자로 환산하면 된다. 단위만 맞추면 비교는 의외로 단순해진다.
비교의 뼈대는 세 줄이다
첫째, 매달 나가는 돈이다. 월세라면 월세액, 전세라면 대출 이자다. 관리비는 두 경우 모두 같은 집이라면 같은 금액이니 굳이 넣지 않아도 된다. 다만 집이 바뀌면 관리비도 바뀌므로 실제 매물의 관리비를 확인해 넣어야 한다.
둘째, 묶인 돈이 못 버는 돈이다. 보증금이 늘어난 만큼 내 통장에서 빠져나가고, 그 돈이 벌어오던 이자도 함께 사라진다. 여기서 중요한 건 늘어난 차액만 계산한다는 점이다. 월세를 살 때도 보증금은 이미 묶여 있었으니, 그 부분은 양쪽에 똑같이 들어가 서로 상쇄된다.
셋째, 한 번 드는 돈이다. 이사비, 중개보수, 대출을 받는다면 그에 딸린 부대비용이 여기 들어간다. 이 돈은 매달 나가지 않는 대신 처음에 한꺼번에 나간다. 첫 두 줄에서 아낀 금액으로 이 돈을 회수하는 데 몇 달이 걸리는지 계산하면, 지금 이사하는 게 이른지 늦은지가 보인다.
내 조건으로 계산해 보기
아래 숫자는 전부 설명을 위해 내가 임의로 정한 가정이다. 금리와 한도는 시기와 조건에 따라 달라지므로, 실제로는 본인 조건으로 다시 계산해야 한다.
지금 사는 원룸은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43만 원이다. 부동산에서 본 전세 매물은 보증금 1억 2,000만 원이었다. 자기 돈 1,000만 원을 그대로 옮기고 나머지 1억 1,000만 원을 대출로 채운다고 하자. 그 대출의 이자가 연 330만 원, 즉 월 27만 5,000원이라고 가정한다.
첫 줄. 매달 나가는 돈은 월세 43만 원에서 이자 27만 5,000원으로 바뀐다. 월 15만 5,000원, 1년이면 186만 원이 줄어든다.
▲ 같은 집을 월세와 전세로 살 때 매달 나가는 돈 (가정 예시 · 직접 제작)
둘째 줄. 자기 돈 1,000만 원은 월세일 때도 보증금으로 묶여 있었다. 늘어난 차액은 전부 대출로 채웠으니 내 통장에서 추가로 빠져나간 돈은 없다. 못 버는 이자도 0원이다. 이 항목이 0이 되는 건 대출 비중이 높기 때문이고, 반대로 모아 둔 목돈을 직접 넣는 사람은 이 줄이 가장 큰 항목이 된다. 예금에 있던 돈을 빼서 보증금에 넣는다면, 그 예금이 주던 이자를 매년 포기하는 셈이니 그 금액을 그대로 적어 넣으면 된다.
셋째 줄. 이사비와 중개보수, 대출 부대비용을 합쳐 200만 원으로 잡았다. 1년에 186만 원을 아끼니 회수에 열세 달쯤 걸린다. 전세 계약이 보통 2년이라는 걸 생각하면, 2년을 채워 살 자신이 있을 때만 이득이 남는 계산이다.
▲ 아낀 돈으로 초기 비용을 회수하는 데 걸리는 기간 (가정 예시 · 직접 제작)
계산에 안 잡히는 것들
세 줄을 다 채우고 나면 결론이 난 것 같지만, 정작 중요한 항목이 표 밖에 남는다.
가장 큰 건 보증금을 돌려받는 문제다. 월세일 때 내 돈은 1,000만 원만 그 집에 있었다. 전세로 옮기면 1억 2,000만 원이 한 집에 묶인다. 계약이 끝나는 날 그 돈이 제때 돌아오지 않으면 매달 아낀 15만 원은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확정일자와 전입신고는 이사 당일에 끝내야 하고, 보증금 반환보증에 가입할 수 있는 매물인지도 계약 전에 확인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움직일 자유다. 월세는 계약이 끝나면 비교적 가볍게 옮길 수 있다. 전세는 다음 세입자가 정해져야 보증금이 나오는 경우가 많아, 이직이나 이사 계획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 시간차 자체가 비용이 된다. 새집 계약금을 넣어야 하는 날과 옛집 보증금이 돌아오는 날이 어긋나면, 그 며칠을 메우려고 급하게 돈을 빌리는 일도 생긴다.
세금 항목도 갈린다. 월세와 전세대출 원리금은 연말정산에서 다루는 방식이 서로 다르고, 요건과 한도도 따로 있다. 두 경우 모두 실제로 얼마가 돌아오는지는 본인 소득과 계약 형태에 따라 달라지니, 국세청 안내나 상담을 통해 자기 조건으로 확인해야 한다.
계산이 끝난 뒤에 남은 것
나는 결국 옮기지 않고 지금 집에 남았다. 계산상으로는 2년을 채우면 이득이었는데도 그랬다. 이유는 숫자가 아니었다. 1억이 넘는 돈을 한 집에 넣어 두고 2년을 기다린다는 게 무서웠다. 며칠 뒤에야 알았다. 내가 무서워한 그 항목이야말로 세 줄짜리 표에 끝내 들어가지 않은 항목이었다는 것을. 표는 매달 아끼는 돈은 정확히 계산해 주지만, 그 돈을 아끼려고 내가 감수하는 위험은 한 칸도 만들어 주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계산을 두 번 한다. 한 번은 숫자로, 한 번은 그 숫자를 감당할 수 있는지로. 전세와 월세 중 무엇이 정답인지 묻는 대신, 내 목돈이 얼마나 묶여도 견딜 수 있는지를 먼저 정하고 나서 표를 채운다. 순서를 바꾸고 나니 표가 훨씬 짧아졌고, 결론도 빨리 났다.
댓글
댓글 쓰기